일상다반사

군사독재자 박정희

2021. 3. 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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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고령 박 씨로 1961년 5월 16일 새벽 4.19 이후 격변기의 정국을 틈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여 18년간 군사독재자로 군림하다가 암살당한 정치군인이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찬탈한 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혼란과 분열로 매도하여 5.16 군사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지나온 역사적 사실들에서 군중들의 여론 형성 과정을 분열과 혼란으로 매도하여 국민을 집단화시키고 조직화시키는 방법으로 독재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이승만의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장면 내각의 민주정부는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무너지고 18년간의 긴 군사독재가 시작되었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군사독재가 남긴 상처는 너무나 깊어서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빠진듯하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가운데 검은 안경)

 

일생사

 

1917년 11월 14일 - 박성빈과 백남의의 5남 2녀 중 5남으로 출생

1926년~1932년 - 구미 공립 보통학교 입학과 졸업

1932년 ~ 1937년 - 대구사범학교 입학과 졸업
1937년 - 문경 보통학교 교사 부임

1940년 ~ 1942년 - 만주국 육군 군관학교 입학과 졸업

1942년 ~ 1944년 - 일본 육군사관학교 편입학과 졸업

1944년 - 만주 국군 보병 소위로 임관
1945년 - 한국광복군 중대장

1946년 - 9월 조선 경비 사관학교(현 육군 사관학교의 전신) 2기생으로 입학. 12월 졸업, 소위 임관
1946년 - 10월 좌익이 일으킨 대구폭동에 가담한 셋째 형 박상희는 경찰에게 사살당했다.
1948년 - 여수 순천 반란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남조선 노동당 내부 기밀정보를 제보하고 사형을 면제받았다.
1950년 -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소령으로 복직
1957년 - 육군대학교 졸업, 제7사단 사단장
1959년 - 육군 제6관구 사령관을 지냄
1960년 - 1월에는 부산 군수기지 사령관, 12월에는 제2군 사령부 부사령관 역임, 둘째 형 박무희 사망

1961년 5월 16일 -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여 군사정권이 시작되었음

1969년 - 3선 개헌 - 대통령 3번 해 먹을 수 있게 헌법 고침

1972년 10월 17일 - 유신헌법 개헌 - 영구집권 가능해짐

1972년 12월 유신헌법으로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

         * 유신헌법으로 국회의원의 3분의 1(73명)을 박정희가 지명하고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찬반 투표함

1973년 8월 8일 - 김대중이 일본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서울의 김대중 집 앞에서 발견됨

1974년 8월 15일 -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부인 육영수 사망

1979년 10월 4일 - 국회에서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 제명

1979년 10월 16일 - 부마 민주항쟁 일어남

1979년 10월 18일 - 부산에 계엄령 선포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계엄군이 옛 부산시청 앞에 탱크와 병력을 주둔시켜 놓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1979년 10월 26일 -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여가수와 여대생 양옆에 끼고 술 마시다가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권총에 맞아 죽음 

김재규가 바깥에서 술자리로 들어가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말하면서 권총이 든 호주머니를 툭툭 쳤다고 한다.

 

현대사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나라는 100% 사회주의 독재국가가 되거나 거지나라가 된 사실을 보면 한국의 앞날도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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